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과정을 준비할 때, 조선 후기 정치사와 대외 관계 파트는 난도가 높고 사료 분석 문제가 빈출되는 핵심 구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이어, 인조 대의 양란(정묘호란·병자호란)과 효종 대의 북벌론, 그리고 현종 대에 벌어진 치열한 예송 논쟁까지의 흐름을 완벽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시기는 조선이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이념적 정당성과 체제 정비를 고민하던 파란만장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1. 병자호란의 발발과 삼전도의 치욕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 정권은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우며 후금을 배척했습니다. 이는 여진족이 세운 후금(후에 청으로 국호 변경)을 자극하였고, 결국 두 차례의 큰 호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정묘호란 (1627년):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의주가 함락되고,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은 후금과 형제 관계의 화약을 맺고 물러나게 했습니다.
- 병자호란 (1636년):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조선에 군신 관계를 강요하자, 조선 내부에서 주화론(화친 주장)과 척화론(주전 주장, 삼학사 등)이 대립했습니다. 결국 척화론이 우세해지면서 청 태종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왔습니다.
- 남한산성 피항과 삼전도의 치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항전했으나,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결국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부딪히는 예식)의 항복례를 치르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한능검 출제 포인트]: 정묘호란(형제 관계)과 병자호란(군신 관계)의 전개 순서,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척화론을 주장하며 청에 끌려가 처형당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이름과 사료를 매칭하는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2. 효종의 북벌론과 대동법의 전국 확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효종 대에는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 국가의 주요 시책으로 대두되었습니다.
- 북벌론의 추진: 송시열, 김상헌 등 서인 및 남인 일부의 지지 아래 군대를 양성하고 어영청을 확대·개편하는 등 군사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다만, 이는 현실적으로 청의 국력이 워낙 강대하여 대내외적인 정치적 명분을 다지기 위한 성격이 강했습니다.
- 대동법의 확대 시행: 전란의 상처를 극복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하삼도 지역으로 대동법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고 상공업 발전을 유도했습니다.
3. 현종 대의 예송 논쟁 (제1차·제2차 예송)
현종 시기에는 왕실의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치열한 정치적 사상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예송 논쟁이라 하며, 예학이 정치의 중심이 된 조선 후기 붕당 정치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 제1차 예송 (기해예송, 1659년): 효종이 서거했을 때 의인왕후(조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 서인(송시열): 주자가례에 따라 사대부와 왕실은 동일하다며 기년복(1년) 주장.
- 남인(윤휴): 왕실은 일반 사대부와 다르며 국왕으로서 예우해야 한다며 참대복(3년) 주장.
- 결과: 인조의 계비였던 조대비의 입장에 맞춰 서인의 주장이 채택되어 서인 정권이 유지되었습니다.
- 제2차 예송 (갑인예송, 1674년): 효종의 비(인선왕후)가 서거했을 때 조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다시 대립했습니다.
- 서인: 대공복(9개월) 주장.
- 남인: 기년복(1년) 주장.
- 결과: 이번에는 남인의 주장이 채택되면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교체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능검 출제 포인트]: 예송 논쟁은 1차(효종 서거, 기해, 서인 승리)와 2차(인선왕후 서거, 갑인, 남인 승리)의 원인, 상복 기간, 그리고 승리한 붕당을 정확하게 표나 암기법으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 2주차-② 핵심 요약 체크리스트 (실전 대비)
- 병자호란: 인조 대 청의 침략으로 삼전도의 치욕 발생, 군신 관계 체결 및 삼학사 순국
- 효종의 북벌론: 청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군제 개편 및 북벌 추진, 대동법의 지방 확산
- 현종의 예송 논쟁: 효종 및 효종비 상복 문제로 서인과 남인 간 대립 발생 (1차 기해예송-서인 승리, 2차 갑인예송-남인 승리)
📝 [실전 대비] 2주차-② 핵심 단골 기출문제 10선
- Q1.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서인 정권이 명을 배척하고 후금을 배척하여 일어난 대표적인 대외 정책 기조는 무엇인가요?정답: 친명배금 정책
- Q2.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하고 형제 관계의 화약을 맺은 전쟁은 무엇인가요?정답: 정묘호란
- Q3.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침략해 왔을 때, 인조가 피신하여 항전했던 산성의 이름은 무엇인가요?정답: 남한산성
- Q4.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화친을 반대하며 척화론을 주장하다가 청에 끌려가 처형당한 대표적인 인물(삼학사) 중 한 명은 누구인가요?정답: 홍익한 (또는 윤집, 오달제)
- Q5.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례를 치렀던 치욕적인 장소의 이름은 무엇인가요?정답: 삼전도 (삼전도의 치욕)
- Q6.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효종 대에 송시열 등 서인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대외 정벌 계획은 무엇인가요?정답: 북벌론
- Q7. 조선 현종 시기 효종 서거 당시 왕실의 상복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논쟁의 명칭은 무엇인가요?정답: 예송 (예송 논쟁)
- Q8. 제1차 예송(기해예송) 당시 효종의 죽음에 대해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이 주장한 상복 기간은 몇 년인가요?정답: 기년복 (1년)
- Q9. 제2차 예송(갑인예송)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게 된 정치 붕당은 어디인가요?정답: 남인
- Q10. 조선 시대 인조 대의 병자호란, 효종 대의 북벌론, 현종 대의 예송 논쟁 중 역사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은 무엇인가요?정답: 예송 논쟁